초능력자들이 세계를 구하는 이야기? 이제는 그 설정도 식상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영화 ‘하이파이브’는 그 시작을 ‘장기기증’으로부터 끌어오며 다소 기묘하고 신선한 영웅담을 선보인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다섯 명의 인물들이 하나의 기적적인 사건을 통해 능력을 얻게 되고, 그들을 위협하는 절대자에 맞서 우왕좌왕하면서도 조금씩 성장해 나간다.
평범한 다섯 사람, 비범한 능력을 얻다
영화는 괴상하게도, 강철 피부를 가진 정체불명의 시신에서 장기를 적출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 장기들은 우연히 다섯 명의 인물에게 이식되며, 각기 다른 초능력을 가져다준다. 태권소녀 ‘완서’는 심장을 이식받아 괴력을 갖게 되고, 폐를 이식받은 작가지망생 ‘지성’은 초인적인 폐활량을 얻는다. 신장을 이식받은 ‘선녀’는 능력을 흡수하거나 전달할 수 있으며, 간을 이식받은 ‘약선’은 치유 능력을 갖지만 그만큼의 고통을 대신 감수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각막을 이식받은 힙스터 백수 ‘기동’은 전자기파를 조작할 수 있는 능력을 손에 넣는다.
이들은 처음엔 서로를 의심하고 갈등도 하지만, 점차 하나로 뭉쳐 ‘하이파이브’라는 팀으로 거듭난다. 개성 넘치는 다섯 캐릭터는 모두 불완전하고 어딘가 모자라지만, 그래서 더욱 인간적이고 공감된다.
웃기지만 묵직하다, 능력보다 중요한 건 관계
이 영화는 단순한 초능력 액션물이 아니다. 오히려 진짜 초점은 인물들이 서로를 만나며 겪는 감정의 변화에 있다. 완서는 과보호하는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고 싶어 하고, 지성은 무능한 자신에 대한 열등감과 자격지심을 숨기지 못한다. 선녀는 과거의 죄책감으로 ‘히어로’라는 타이틀에 기대어 살아가고, 약선은 신념과 현실 사이에서 흔들린다. 기동은 철없는 척하지만 사실 누구보다 상처가 깊은 인물이다.
서로 다른 사연과 상처를 가진 이들이 능력을 통해 연결되고, 그 연결이 점차 의미 있는 관계로 발전해 간다. 초능력은 오히려 이 관계들을 풀어내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함께 치킨을 먹고, 싸우고, 울고, 서로를 지켜주는 장면들에서 오는 유쾌한 따뜻함이 영화의 중심을 이룬다.
적도 인간이었다, 빌런의 입체적인 존재감
주인공 다섯 명의 능력을 위협하는 존재는 새신교 교주 ‘영춘’이다. 췌장을 이식받고 생명력을 흡수하는 능력을 갖게 된 그는 절대자가 되기 위해 다른 능력자들의 장기를 차례로 빼앗으려 한다. 단순한 악역일 것 같지만, 그의 과거 역시 한 편의 비극이다. 가난한 어린 시절, 약장수로 떠돌다 사이비 종교를 창립하고 그 안에서 ‘신’이 되고 싶었던 한 인간의 욕망은, 뒤틀렸지만 이해가 되는 지점이 있다.
선함과 악함의 단순한 이분법을 넘어서, ‘신명’이란 이름에 걸맞게 인물들의 감정과 동기가 매우 구체적으로 그려져 있다는 점이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든다. 빌런이 단순히 ‘무찌를 대상’이 아니라 ‘넘어야 할 존재’로 그려지는 것도 흥미롭다.
한 편의 유쾌한 히어로 연극, 그러나 가볍지만은 않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밝고 경쾌하지만, 그 이면에는 묵직한 메시지들이 숨어 있다. 삶의 의미, 가족, 죄책감, 연대라는 키워드가 초능력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병으로 고통받던 사람들이 새로운 장기를 통해 다시 살아가는 이야기이기에, 그 자체로도 상징성이 크다.
게다가 “우리는 각자의 장점을 가진 불완전한 존재지만, 함께할 때 완전해질 수 있다”는 영화의 메시지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위로처럼 다가온다.
마무리: 완벽하진 않지만, 힘을 내는 사람들 이야기
‘하이파이브’는 슈퍼히어로물을 코믹하게 비틀면서도, 결국은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초능력은 유쾌함을 위한 장치일 뿐, 진짜 힘은 사람 사이의 신뢰와 희생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조용히 이야기해 준다.
웃고, 울고, 뭉클해지는 이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누군가의 손을 잡고 “하이파이브”를 외치고 싶어진다. 불완전한 사람끼리 손을 마주 잡으며, 조금 더 나은 내일로 나아가는 그들의 여정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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